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잊고싶은 기억들../스캠 - 흔들려버린 나의 일상

절망 끝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: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을 때 나를 지킨 것들

by 어둠속의긴터널의끝 2025. 11. 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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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hoed Feet Overlooking Cliff Edge Photo - Photo by Brodie from Burst  S

조서 접수 후에도 끊지 못했던, 허망한 끈

저는 이미 'X들'의 만행에 대한 조서를 접수한 후였습니다.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그 'X들'과의 연락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하루에 한두 번씩 메신저 창에 접속했습니다. 무슨 미련이었을까요. 어쩌면 그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.

매번 그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황당함 그 자체였습니다. 자신들의 차, 집, 심지어 보석과 명품 가방까지 모조리 저당 잡혔다는 뻔한 거짓말을 계속 들어야 했죠.

분노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허탈함이었습니다. "내가 정말 제대로 당했구나." 대체 제가 무엇에 눈이 멀어 이 지경까지 왔는지, 모든 상황들이 원망스러웠고, 머릿속은 온통 **'어떻게 이 난관을 해결해야 할까?'**라는 질문으로 가득 찼습니다.

사채업자처럼 변한 그들의 끝없는 독촉

어떻게든 이 끈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, 그들의 독촉은 날이 갈수록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해갔습니다. 그들은 마치 제게 빚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 같았습니다.

"너 얼마까지 되? 그거밖에 안되니?" "신용대출 있잖아? 친구 없니? 좀 더 빌려봐."

메아리처럼 매일매일 이어지는 독촉에 저는 정신적으로 갉아 먹히고 있었습니다. '전생에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겼을까' 원망도 많이 했지만, 당장 이 고통을 멈출 방법은 없었습니다.

2주가량 독촉 아닌 독촉을 당하다 보니 결국 오기가 생기더군요.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, 메신저 창에 제 분노의 말들을 쏟아부었습니다.

물론 그들 역시 제게 더 나올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.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허무함 앞에서, 저는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.

'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'는 말의 의미

조서를 접수하기까지, 그리고 그 이후 얼마간은 제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었습니다. 뭘 먹는 건지,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,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몸소 깨달았습니다.

특히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, 건물 옥상을 쳐다보기 힘들었던 부분입니다.

건물이 2층이든, 3층이든, 고층 건물이든 상관없이 자꾸만 위에서 누군가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. **"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미친다"**는 말이 이런 걸까 싶더군요. 정신이 끊임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고통이었습니다.

절망 속에서 나를 지탱해준 '두 가지 루틴'

하지만 다행히도, 저에게는 절망 속에서 붙잡을 수 있는 두 가지 닻이 있었습니다.

첫째, 루틴으로 자리 잡았던 '운동'입니다.

힘들어도 매일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렸던 그 시간이 저를 지독한 생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출구였습니다. 육체의 고통이 정신의 고통을 덮어주었던 것 같습니다.

둘째, 힘든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'몇 명의 지인'이었습니다.

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었습니다. 이마저도 안 되었다면, 아마 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.

당신에게 전하는 메시지

살면서 참 여러 힘든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, 그때마다 저를 일으킨 것은 **'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'**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었습니다.

오히려 절망 속에서도 **'내가 할 수 있는 루틴을 유지하는 힘'**과, 나의 가장 치부를 기꺼이 보여주고 **'도움을 구할 수 있는 용기'**였습니다.

만약 지금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면, 절대 혼자 감당하지 마세요. 도움을 요청하세요. 그리고 당신의 일상을 지탱해 줄 아주 작은 루틴이라도 붙잡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세요.

결국,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. 저처럼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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